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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모나이트>는 데뷔작 <신의 나라>로 주목할 만한 퀴어 영화를 만든 프란시스 리 감독의 신작이다. <신의 나라>가 유럽의 이주 노동자와의 절절한 사랑을 다루었다면 <암모나이트>는 19세기를 배경으로 극명한 신분 차이의 로맨스로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 광활한 대자연 속 마주한 낯선 감정이 서서히 전이되는 상황과 시대적 제약이 배우의 연기를 연료 삼아 러닝타임을 꽉 채운다. 케이트 윈슬렛과 시얼샤 로넌의 조합으로 더욱 화제가 된 영화는 마치 200년 전으로 되돌아간 듯 연정의 눈빛이 아름다운 해변 풍경과 앙상블을 이룬다. ​ 상처 받은 이유와 깊이가 다르지만 이를 사랑으로 회복하려는 발버둥이 느껴진다. 때문에 배경보다는 두 인물을 클로즈업한 장면이 대부분이고 대사도 많지 않다. 실존 인물인 메리 애닝이 동성애자였는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프란시스 리 감독은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완성했다. 그래서 다소 서사가 간결하고 투박하며 불친절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곱씹을수록 그 진가가 나타나는 부류에 속한다. 고생물학자 메리(케이트 윈슬렛)는 11살에 도마뱀 화석을 발견해 이름을 떨쳤지만, 현재는 관광객을 상대로 싸구려 기념품을 만들어 파는 일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 그 시대의 권력은 메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학계의 주목을 받았지만 노동계급 여성이란 이유로 명성을 빼앗기고 구석진 시골에서 연로한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 처지다. 고단한 생활은 타인을 사랑하는 자연스러운 마음까지도 굳게 걸어 잠갔다. 호감을 표시한 엘리자베스(피오나 쇼우)를 피하며 철저히 고립을 자초하는 태도를 보인다. ​ 19세기는 여성이 그렇다 할 교육도 사회적 지위도 얻기 힘든 시대였다. 가부장적 제도에 눌려 결혼도 하지 않은 여성은 평생을 가난과 싸워야 했기에 해변을 누비며 화석을 발견하는 메리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남성처럼 전문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독학으로 얻은 지식을 몸으로 탐구하는 여성 과학자의 삶은 투박하지만 경이롭게 느껴진다. 위험한 절벽에 오르다 미끄러지거나 진흙더미에서 옷이 더러워져도 개의치 않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해변으로 향하는 성실한 과학자. 열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자신의 소명을 다하는 집념의 여성이 메리였다. 누군가의 눈에는 발에 차이는 수많은 자갈 중에 하나 일지 몰라도 메리의 눈에 띄면 가치를 인정받는다. ​ 그러던 어느 날, 아이를 잃고 몸과 마음의 상처를 입은 채 요양차 온 상류층 부인 샬럿(시얼샤 로넌)을 만난다. 그렇게 지루한 메리의 일상에 변화가 찾아온다. 자신도 모르게 다가온 샬럿은 반복되는 일상에 한 줄기 빛이었다. 샬럿은 해변을 가볍게 산책할 요량이었지만 메리는 그럴 여유가 없는 사람이었고, 어쩌 수없이 혼자서 해수욕을 하다 몸져눕게 된다. 아픈 샬럿을 메리가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며 차츰 호전되고 이를 계기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아이처럼 돌봐줘야 할 것 같은 샬럿, 투박한 듯 보이지만 수줍은 소녀를 지닌 메리는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그러나 짧은 만남을 뒤로한 채 남편이 돌아오고, 샬럿은 런던으로 급하게 되돌아가게 된다. ​ 영화는 여성, 계급, 전문직, 퀴어, 바닷가 등이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암모나이트>는 서사를 쌓아 올리기보다 여백의 미를 즐기는데 초점을 두었다. 끝없어 보이는 수평선 넘어의 광활한 바다 너머의 세계처럼 굳이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표정, 몸짓, 시선으로 저며 드는 감정을 오롯이 느끼도록 연출했다. 즉, 감독이 모든 것을 결정해 주지 않고 관객 스스로 체득하는 열린 영화다. 갑작스러운 만남과 타오르는 감정, 꺼져버린 관계가 중간 과정을 생략한 채 훅하고 다가오는 이유일지 모른다. 암모나이트는 암석 안에 숨어 있어 눈에 띄지 않는다. 거친 바닷바람을 맞으며 암석을 깨는 고된 시간을 보낼 때에야 만날 수 있는 진귀함이다. 화석 발굴의 집요함이 알려주듯 쉽게 내어주지 않는 상대방의 마음을 발견하고 발굴하는 과정을 거치는 영화다. 오랜 세월 숨어있다가 누군가에 의해 발굴되는 기적처럼 수많은 돌 중 하나였을 화석은 일종의 메타포인 것이다. 때문에 이들의 비밀스러운 관계가 자꾸만 김춘추 「꽃」의 한 글귀처럼 마음속에 각인돼 자리 잡는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지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자 나에게로 와 꽃이 되어 준 것처럼. #암모나이트 #퀴어로맨스 #영화리뷰 #Ammon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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