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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화루 2층 문루에서 본 나주객사 금성관과 나주목사 내아 금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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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태조왕건을 재미나게 본 적이있었다. 914년 고려 태조 왕건이 군사를 이끌고 행군하던 중 목이 말라 우물을 찾다가 나주 금성산 남쪽에 상서로운 오색 구름이 서려 있는 것을 보고 말을 타고 그곳으로 달려 갔다. 열일곱 살쯤 보이는 예쁜 낭자가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물을 청하자, 낭자는 바가지에 버드나무 잎을 띄워서 건내주었다. 버드나무 잎을 띄운 까닭을 왕건이 물었다. "장군께서 급히 물을 마시다가 혹 체할까 염려되어 그리 하였나이다." 이에 감동한 태조는 그의 아버지를 찾아가 청혼을 하고, 흔쾌히 승락을 받았다. 이 여인이 바로 고려 초대 왕 국모 장화왕후 오(吳)씨다. 장화왕후 오씨가 낳은 아들이 제2대 왕 혜종 무이고, 그래서 나주 오씨는 명문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드라마의 내용이 허구 이지만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였다. 나주는 백제 때의 이름이 발라군이다. 물론 백제 이전에는 불미지국이 있었다고 한다. 통일신라 때부터 금성군(금산군)이었고, 견훤이 후백제 건국 이후 903년에 지금의 이름인 나주가 되어 982년(성종 2년)에 나주목이 되었다가 1895년 지방제도 개편으로 나주관찰부가 설치되고 1896년 전국을 13도로 나누어서 전라남도청이 광주에 설치 될 때까지 천여 년간 남도의 중심 도시였다. 나주 금성관은 고려·조선시대에 각 고을에 설치하였던 객사(客舍)중이 하나다. 객사는 고려 전기부터 있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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